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반은 음악사에서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꽃피운 시기였습니다. 그 무대의 중심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다소 낯선 존재인 카스트라토 가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남성과 여성의 음색을 동시에 지닌 듯한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었고, 바로크 양식이 선호한 화려함과 기교를 완벽히 구현해내기에 최적화된 악기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헨델의 대표작 <리날도>는 이러한 음악적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1711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후 바로크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페라 세리아와 카스트라토의 의미, 당시 악기와 아리아의 특징, 그리고 헨델의 <리날도>가 지닌 음악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오페라 세리아와 카스트라토의 무대
오페라 세리아는 문자 그대로 ‘진지한 오페라’를 뜻합니다. 당시 유럽 귀족 사회는 오페라를 단순한 오락이 아닌, 권력과 품격을 드러내는 무대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오페라 세리아는 영웅적 이야기와 신화적 소재를 다루었으며, 화려한 무대 장치와 성악가들의 뛰어난 기교가 결합된 종합예술로 발전했습니다.
이 무대의 주역은 바로 카스트라토 가수였습니다. 그들은 소년기에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특수한 과정을 거친 이들로, 남성의 폐활량과 힘, 그리고 소프라노·알토 음역의 밝고 화려한 음색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청중에게는 다소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제도이지만, 당시에는 카스트라토가 오페라의 ‘스타’였으며, 최고의 명예와 인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가난한 집안의 소년들에게 카스트라토가 되는 길은 일종의 ‘복권’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성공하면 궁정과 극장의 스타로서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화 파리넬리는 카스트라토 가수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하며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속에서 불린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단순히 극 중 상황뿐만 아니라, 카스트라토 개인이 겪었던 고독과 고통을 동시에 비추며 시대의 이중성을 보여주었습니다.
2. 기악적 아리아와 바로크 악기의 영향
카스트라토의 음색과 기교는 단순한 노래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17세기 말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아마티, 스트라디바리와 같은 명장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을 제작했습니다. 이 악기들은 맑고 투명하며 민첩한 음색으로 유럽 전역을 매료시켰고, 성악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작곡가들은 이제 성악가들에게도 악기처럼 노래하기를 요구했습니다. 가수들은 바이올린의 빠른 패시지를 모방해 민첩하게 노래해야 했고, 트럼펫처럼 강렬하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했으며, 오르간처럼 깊고 육중한 힘을 표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요구를 완벽히 소화할 수 있었던 존재가 바로 카스트라토였습니다.
따라서 오페라 세리아의 아리아는 단순히 감정을 전달하는 노래가 아니라, 악기적 기교를 성대 위에서 재현하는 무대였던 셈입니다. 이는 관객들에게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경험을 선사했으며, 카스트라토는 곧 오페라 무대의 ‘악기이자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 헨델의 <리날도>와 바로크 오페라의 정수
조지 프리드리히 헨델은 독일 출신으로,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활약하며 오페라 세리아와 오라토리오 장르를 완성한 거장입니다. 그의 첫 런던 오페라인 <리날도>(1711)는 화려한 무대와 다양한 아리아들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다양한 감정 표현입니다. 헨델은 각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아리아로 풀어내며, 바로크 시대 특유의 장식과 기교를 넘어서 인간적인 감정까지 담아냈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단순한 곡 이상의 울림을 지니며, 바로크 오페라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남아 있습니다.
또 다른 아리아 <축제의 나팔을 불어라>(Or la tromba)는 힘차고 당당한 바로크 음악의 카리스마를 보여줍니다. 화려한 트럼펫 선율과 함께하는 이 노래는 관객을 매혹시키며, 헨델이 지닌 극적인 감각을 극대화합니다.
헨델은 오페라 세리아를 통해 단순히 음악을 쓰는 작곡가가 아니라, 마치 왕이 무대를 지배하듯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선포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카스트라토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구현해낼 수 있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맺음말
오페라 세리아와 카스트라토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크 시대가 추구한 화려함과 극적인 표현을 완벽하게 드러낸 인물들이었습니다. 헨델의 <리날도>는 그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며 바로크 음악의 매력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페라 세리아는 단순히 과거의 장르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열망과 음악적 상상력이 집약된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카스트라토와 헨델의 작품은 지금도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다음 번에 오페라 무대를 접할 기회가 있다면, 줄거리보다 음악적 표현과 아리아의 힘에 귀 기울여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