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초연된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입니다. 작곡 당시 모차르트는 30세였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불과 3년 전이었습니다. 작품은 알마비바 백작의 하인 피가로의 결혼식을 둘러싼 소동을 다룬 네 막짜리 희극 오페라, 즉 오페라 부파로 분류됩니다. ‘오페라 부파’는 기존의 진지한 오페라 세리아와 달리 익살스럽고 현실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르입니다.

1. 줄거리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를 감상할 때 줄거리 설명에 집중하지만, 사실 오페라의 본질은 이야기보다 음악에 있습니다. 줄거리와 인물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페라의 극적 구조는 연극보다 단순할 때가 많고, 대사의 가사만 따로 떼어내면 오히려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함께할 때, 그 단순한 대사는 놀라울 정도로 깊은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게 됩니다. 따라서피가로의 결혼을 감상할 때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이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되는지 집중하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을 줍니다.
2. 중심 등장인물 네 명
이 작품의 핵심 인물은 네 명입니다. 알마비바 백작과 그의 아내 백작 부인, 그리고 하인 피가로와 그의 약혼자 수잔나입니다. 이 구조는 한국의 고전 춘향전의 커플 구도와도 비슷합니다. 춘향과 몽룡, 향단과 방자가 극을 이끌어가듯, 피가로의 결혼에서도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주요한 축을 이룹니다. 다만 신분의 벽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미묘한 긴장을 품고 있습니다.
인물들의 성격
- 알마비바 백작: 권력과 욕망을 가진 귀족으로, 수잔나에게 은근히 관심을 보입니다.
- 백작 부인: 남편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하는 여성으로, 고결하면서도 애잔한 내면을 지녔습니다.
- 피가로: 영리하고 재치 있는 하인으로, 결혼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상황을 타개합니다.
- 수잔나: 현명하고 당찬 인물로, 위기를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중심 인물입니다.
이 네 사람은 각자 다른 성격과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야기는 그들의 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전개됩니다.
3. 목소리로 드러나는 캐릭터의 성격
모차르트는 인물들의 개성을 단순히 대사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목소리의 색깔을 통해 성격을 표현했습니다. 이는 오페라가 가진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로, 소설처럼 장황한 묘사 없이도 성격을 직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음역과 성격의 연결
- 백작 부인: 남편만을 기다리며 애타는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리리코 소프라노 배역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이 음색은 맑고 가늘며, 부드러운 선율을 통해 그녀의 외로움과 고결함을 전달합니다.
- 수잔나: 활발하고 꿋꿋한 성격을 가진 그녀는 레제로 소프라노가 맡습니다. 밝고 경쾌한 소리로 위기를 지혜롭게 풀어가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처럼 음색 하나만으로도 인물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관객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캐릭터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4. 선율로 전해지는 감정
오페라의 진짜 힘은 선율에 있습니다. 대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뉘앙스가 음악을 통해 더욱 직접적이고 함축적으로 전달됩니다. 예를 들어, 백작 부인의 아리아는 고독과 기다림을 노래하며 관객의 감정을 울리고, 수잔나의 가볍고 발랄한 선율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각 인물의 내면과 상황을 미묘하게 드러냅니다. 이 때문에 줄거리의 단순함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은 음악을 통해 훨씬 풍성한 드라마를 경험하게 됩니다.
5. 왜 피가로의 결혼을 들어야 할까?
피가로의 결혼은 단순한 희극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한 교과서 같은 작품입니다. 권력과 사랑, 계급과 자유 같은 주제는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을 줍니다. 또한 모차르트 특유의 섬세한 선율과 조화로운 앙상블은 오페라 초보자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줄거리에 얽매이지 말고, 음악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인물들의 성격과 감정이 목소리와 선율에 담겨 있어,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통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맺음말
1786년 비엔나에서 초연된 이후 피가로의 결혼은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사랑받아 왔습니다. 이 작품은 희극적 유머와 인간적인 따뜻함, 그리고 음악적 완성도를 동시에 갖춘 걸작입니다. 만약 오페라 감상에 입문하고 싶다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더없이 좋은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