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와 18세기를 아우르는 바로크 시대는 음악사에서 실험과 다양성이 꽃피었던 시기였습니다. 현대의 클래식 공연에서 흔히 접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중심의 편성 이전에는, 지금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다양한 악기들이 무대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특히 건반악기의 세계에서는 오늘날 피아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악기들이 존재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르간, 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라는 세 가지 건반악기를 중심으로 바로크 시대 음악의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1. 다양한 악기의 공존: 바로크 음악의 풍경
바로크 시대 이전에도 음악은 존재했지만, 17세기 초는 새로운 악기가 등장하고 기존 악기가 재조명되던 시기였습니다. 바이올린 패밀리가 막 태동하면서, 현악 합주에서 바이올린은 점차 비올과 류트를 밀어내며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건반악기의 영역에서는 오르간, 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가 나란히 사용되었습니다. 세 악기 모두 흑백 건반을 눌러 소리를 내지만, 내부 구조와 발음 원리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로크 음악이 고전주의로 넘어가면서 악기의 다양성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현악기는 바이올린 계열로, 건반악기는 피아노로 수렴되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랜드 피아노와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음악의 중심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연주자와 청중이 바로크 악기에 다시 주목하는 이유는, 그 시대 특유의 음향적 색채와 역사적 진정성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오르간: 웅장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담은 악기
세 건반악기 중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것은 단연 파이프 오르간입니다. 겉보기에는 건반을 눌러 연주한다는 점에서 피아노와 같지만, 실제로는 관악기에 더 가깝습니다. 건반을 누르면 내부의 파이프에 공기가 주입되며 소리가 나는데, 이는 리코더에 숨을 불어넣는 원리와 흡사합니다. 수백 개의 파이프가 크기와 길이에 따라 배열되어 있어, 웅장한 합창 같은 음향을 만들어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오르간은 대체로 교회 음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7세기와 18세기에는 종교적 용도뿐 아니라 세속적인 즐거움을 위한 곡도 많이 작곡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얀 스벨링크나 독일의 요한 케를 같은 작곡가들은 춤곡과 변주곡 형식의 오르간 소품을 남겼습니다. 이 곡들은 단순히 경건한 분위기만이 아니라, 청중에게 가벼운 기쁨과 유희를 선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르간은 그 크기와 구조 때문에 연주자가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는 음색의 팔레트와도 같습니다. 한 대의 악기에서 현악기, 관악기, 심지어 합창단 같은 소리를 구현할 수 있었기에,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에게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제공했습니다.
3.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 피아노 이전의 건반악기
하프시코드(harpsichord)는 건반을 누르면 현을 뜯어내듯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마치 기타나 류트처럼 줄을 튕기는 원리이지만, 건반으로 제어하기 때문에 일정한 음량과 명확한 발음을 냅니다. 다만 강약의 변화를 자유롭게 조절하기 어려워, 음색은 맑고 화려하지만 다소 기계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크 시대의 많은 건반 음악은 하프시코드를 위해 쓰였고, 바흐와 헨델의 건반 작품 대부분이 이 악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클라비코드(clavichord)는 하프시코드와 정반대로, 건반을 누르면 작은 금속 조각이 현을 직접 눌러 소리를 냅니다. 그 결과 음량은 작고 섬세하지만, 연주자가 미묘한 강약과 음색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특히 클라비코드는 비브라토와 같은 표현까지 가능하여, 당시 음악가들에게는 개인적인 연습과 작곡을 위한 악기로 사랑받았습니다. 청중을 위한 공연보다는, 작곡가의 방에서 조용히 울리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동반자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피아노의 등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8세기 초반, 크리스토포리가 발명한 피아노는 하프시코드의 명료함과 클라비코드의 섬세함을 모두 담으려 했습니다. 건반을 누르는 힘에 따라 음량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던 피아노는 결국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중심 악기로 자리 잡으며, 다른 건반악기를 대체하게 됩니다.
맺음말: 잊혔다가 다시 살아난 바로크 건반악기
바로크 시대의 건반악기들은 오늘날 무대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당대 악기 연주 운동이 확산되면서, 오르간·하프시코드·클라비코드는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악기로 연주된 바로크 음악은 피아노로 연주할 때와는 전혀 다른 색채와 질감을 전달하며, 청중에게 새로운 감흥을 선사합니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르는 작품들 중 상당수는 처음부터 엄숙한 무대용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친근한 공간에서 울려 퍼졌던 음악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건반악기를 통해 그 사실을 떠올린다면, 클래식은 더 이상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 살아 있는 예술로 다가올 것입니다.